2022년 7월 17일 일요일

붓다의 삼심설(三身說)

 붓다의 삼심설(三身說) 

 

 

 한편 큰스님께서는 염불선 뿐만 아니라 붓다의 삼신설에 대해서 많은 가르침을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통해 설해 주셨다붓다의 삼실설은 그동안 승가(僧家)에서 그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최고의 비결(秘訣)이라 할 수있다.

 

 큰스님께서는 이렇게 사자후 하신다“붓다를 이룬이는 법화 삼신을 구족해서 평등적인 무아 속 절대세계와 차별적 중생세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분이라 밝힙니다.” 이는 인류 최대의 문명의 총아인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 서도 여실히 알 수 있다.

 

 최근 컴퓨터 시스템은 3계층 구조로 구축되어진다. 3계층은 바로 3단계로 처리(프로세스)가  이루어 진다는 뜻이다 3계층 컴퓨터 시스템은 서양철학에 의하면 플라톤의 이데아여기서는 붓다의 삼신)를 모사(模寫)한 시뮬라크로(Simulacra)에 해당한다.

 

 부처님의 법신을 근간으로 보신이 있고 보신을 배경으로 응화신을 나툰다는 점은 인류 최대의 이기(利器)인 컴퓨터 문명의 핵심 프레임워크(뼈대)로서 3계층 컴퓨터 시스템에 투영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어찌 지고한 붓다의 삼신을 현상계의 단지 하나의 미물(微物)인 컴퓨터 시스템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

 

 다만 포괄적 이해를 위해서 이데아가 바로 붓다의 삼신이라면 이 이데아를 모사한 시뮬라크르가 바로 3계층 컴퓨터 시스템이라고 비유한 것이다강조하는 바 이러한 비유는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지 실재의 복사는 아니다다만 불가의 고승(高僧)께서 “삼라만상이 설법을 한다.”는 이치를 올바르게 해득한다면 이 이치가 삼천대천세계의 핵심 메타포(Metaphor)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각설하고 만현 큰스님께서는 삼신설은 인도의 무착천친 큰스님에 의해 확립되었다고 하셨다그 다음으로는 <<보성론>>의 삼신을 들 수 있다고 하시며 여기서는 불신곧 원만보신은 무량광즉 억종광백종오색광열반광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맞다고 하셨다큰스님께서는 <<금광명최승왕경>> 제 二권 3<분별삼신품>, 용수의 삼신관(三身觀), 인도의 마명과 용수(주저<<대지도론>>) 큰 스님과 몇몇 중관의 논사들 그리고 유가행(瑜伽行)학파 기타 논서(가령 무착<<섭대승론>>, 견해 <<보성론>>)등 붓다의 삼신설과 관련하여 무수히 많은 역대 불가의 최고의 큰스님들과 그 분들의 주저(主著)를 모두 꿰뚫어 보시는 탁월한 안목과 식견을 겸비하셨다는 점에 필자는 크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큰스님은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불신을 얻지 못하면 붓다가 아니며 사바세계에 한 분의 붓다가 나오려면 삼계왕이신 석가모니부처님의 선택이 있어야 합니다주로 선근 보따리가 붓다 되기에 충분한 수행승이 낙점됩니다선택된 이가 바로 상품상의 보살입니다“이 얼마나 자세한 말씀인가큰스님이 자상하게 밝히신 붓다의 삼신설 내용들은 어느 하나하나 경천동지(驚天動地)가 아닌 사자후가 없다.

 

 여기에 큰스님은 연이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이 수행승은 공부 중에 무량광을 봅니다그런 다음 또 하나의 큰 관문을 거쳐서 자기를 찾아온 많은 부처님들을 뵙고 직접 법문을 듣게 됩니다거룩하신 부처님들의 법문을 듣고 공부를 지도 받는 것입니다보다 자주 깊은 삼매에 들어가서 붓다로서의 공부를 마치게 됩니다.

 

 이 부분은 심도 있게 정신계를 공부하거나 정신계에 대한 심오한 이해를 구족한 수행자 또는 구도자라면물론 그러한 구도자가 지구상에 드물지마는 여타의 종교와 영성세계를 수행한 구도자건 상관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할 내용이다왜냐하면 서양의 신지학(神智學등에서도 모든 수행이 정신계의 스승으로부터 공부를 배워야 진실된 공부라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수행자들 간에 회자되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음의 큰스님의 말씀을 살펴보자.

“불과를 이룬 이의 4개의영체는 각기 독립해서 분리하여 활동합니다바람과도 같이 이거짓몸뚱이서 빠져 나와서 말입니다죽을 때는 4개의 영체가 자기 불신부처님 세계에 있는 자기 불신과 하나로 계합합니다‘지복의 몸’과 하나가 됩니다그 불신(원만보신)은 무아 속 절대세계즉 상적광토에 청접법신 을 둡니다자기의 법신곧 ‘우주적인 몸’을 둡니다이제 우주 자체(시공을 자체화함)인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큰스님께서 생사(生死)의 과정(Process)과 흐름 속에서 우리의 영혼체가 어떻게 변전(變傳)하는 지를 여실지견으로 파악하고 계신다는 점을 알 수 있다.

 

 4개의 영체에 대한 설명은 힌두의 수행체계에서 취하신 것이나 원래 근본불교에서 전해져왔는데 어느 순간 누실되었다고 하신다 4개의 영체에 대한 이론은 신지학에서도 거론되고 있다그리고 부처님 세계에는 불신으로서 원만보신이 그리고 무아 속 절대세계인 상적광토 (연화장세계)에는 청정법신을 둔다는 것은 가히 큰스님이 친히 증험한 붓다의 경지가 아니고서는 그누가 할 수 있는 말이겠는가?

 

 큰스님께서 하신 다음의 가르침을 해석해 보자“사실은 부처님의 법신이야말로 진불(眞佛)입니다거래도 없고 머묾도 없습니다법계를 비추는 대지의 광명체로서 초월이요평등입니다초월적 인격적 실존이신 보신의 근본이 되어 이미 인격이 아닙니다대우주아입니다“여기서는 석가모니부처 님의 법신이 우주적인 몸으로서의 법신이며 진불임을 소상하게 밝히셨다.

 

 여기서 우리는 법계를 비추는 대지의 광명체로서 초월적이고 평등적인 법신과 인격적 실존으로서 보신을 비교해서 이해할 수 있다이 얼마나 극명한 설명인가어느 누가 붓다의 삼신설에 이렇게 자세하게 증험(證驗)적 차원에서 서술 할 수 있을까수행의 진검승부는 바로 고강한 내공으로 얼마나 고난이도의 승탑(僧搭)을 쌓느냐즉 자신의 내면에 최고의 경지를 구축하고 완성하느냐에 있다 하겠다.

 

 더 나아가서 큰스님께서는 이렇게 밝히신다“붓다 세계에 계신 불신이 보신입니다보신은 무아 속 절대계에 자기의 법신을 둡니다그래서 법신은 보신과 화신의 근본체입니다.” 이제 법신과 보신의 관계는 자명해 졌다법신이 체라면 보신은 용이며 보신이 체라면 화신은 용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불가에서 진부하게 거론되고 있던 체용철학(體用哲學)에서 그토록 강조하고 찬탄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에 대한 설명을 큰스님은 보다 간명하고 확실하게 적고 있다“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저 하늘에 떠 있는 태양과도 같이 언제나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고 있습니다‘전 우주적인 몸뚱이’가 그의 본질적인 성품입니다대우주이시며 절대와 동일한 변조 광명입니다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석가모니부처님의 법신체로서 모든 붓다들의 청정법신을 총섭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거룩하고 희유한 사자후요 가르침이 아니겠는가선근을 지닌 모든 불제자라면 부처님에 대한 신심(信心)을 더욱 굳건하게 해주고 발심(發心)을 내어 수행정진하게 해주는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추가로 말씀하신다“부처님의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언제나 온 법계를 두루 비추고 계십니다.”라고우리는 왜 시방세계와 삼천대천세계에 부처님이 두루 상주하고 계시는지에 대한 의미를 이제야 보다 실재적으로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또 다음의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글을 원용해 본다“ 그 렇듯 붓다님들은 빛으로 일체처 일체시에 아니 계신 곳 없기 때문에 법신 개념에서 볼 때 천수천안이 문제가 아니며 가고 오고하는 그런 존재도 아닙니다무소종래이며 역무소거입니다삼천대천세계 우주 자체가 바로 붓다의 몸입니다.” 참으로 희유한 가르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마지막 구절 ‘ 삼천대천세계 우주 자체가 바로 붓다의 몸’이라는 내용은 붓다의 삼신설의 백미(白眉)요 압권(壓卷)이다이 말씀에는 불제자가 만약 붓다를 이룬다면 진실되고 완벽하게 우주와 계합된 우주대아(宇宙大我)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P228~233

 

 

 

 

 

불 법신 _즉 '우주적인 몸'

 불 법신 _즉 '우주적인 몸'

 

 

 

 

사실은 부처님의 법신이야말로 진불입니다.  거래도 없고

머묾도 없습니다.  법계를 비추는 대지의 광명체로서 초월이요 평

등입니다.  초월적 인격적 실존이신 보신의 근본이 되어 이미 인

격이 아닙니다.  대우주아입니다.

 

전생에 이미 불과를 이룬 붓다가 이 사바세계에 사람 몸을 받아

오실 경우가 있습니다.  그 몸을 응화신이라 합니다.  붓다는 원력

수생하기 때문에 주로 왕궁으로 몸을 받아 나십니다.

 

이때에도 자기의 불신은 거기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한번 얻

은 불신은 그 생명이 영원합니다.  보신은 유시무종합니다.

 

붓다세계에 계신 불신이 보신입니다.  보신은 무아 속 절대계

에 자기의 법신을 둡니다.  그래서 법신은 보신과 화신의 근본체입

니다.  삼차원 세계에 사는 우리들의 의식구조로서는 이해하기가

다소 어려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몇 마디 더 부연해서 해설해 보겠습니다.

 

아미타불은 지금 서방극락세계의 교주이시며,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한 보살들을 붓다 될 수 있도록 교화하고 계십니다.  아미타불

의 불신을 <보성론>의 개념으로 보면 보신이라는 것으로, 원만보

신입니다.  색상이 단엄한 32상 80종호를 구족 하시고 광휘가

현란합니다.

 

그런데 그 부처님은 10겁 전이 아니고 실로 무량겁 전에 불과를

이루신 오여래 부처님 가운데 한 분이십니다.  당신의 법신을

무아 속 절대계에 두고 계십니다.

 

관세음보살은 무량겁 전에 불과를 이루셨고 붓다 이름이 '정법

명왕' 입니다.  무아 속 절대계에 법신을 두시고 원만보신을 나투어

극락세계에서 아미타부처님의 좌보처로 계십니다.

 

관세음보살이 남섬부주 중생을 교화하시려 변화신으로 오실 때

는 자모의 모습이십니다.  머리엔 아미타불을 정대한 화관을

쓰시고, 목엔 영락을 두르시고 하얀 실크드레스 같은 옷에 가끔은

버들가지를 드신 백의관음의 모습이십니다.  남선부주에 와서 불

과를 이룬 붓다의 대법회에 가끔 현신하셔서 천수천안1천의 화신

나투실 때도 종종 있으며 이때에는 백종오색광명을 놓아 축복해

주십니다.  32응신을 나투시어 불법과 인연 있는 불자들을 교화해

서방극락정토로 인도하시기도 합니다.

 

관세음보살의 좌우보처는 해상용왕과 남순동자가 아닙니다.  큰

부처님이시기에 불격을 갖추신 상수보살인 해수관음과 육관음이

좌우 보처가 됩니다.  해수관음은 여인상이지만, 육관음은 때에 따

라 여섯 몸으로 나투시는 남자상입니다.

 

불정심 관세음보살 모다라니 진언은 해수관음 진언이며, 육관음

진언은 "옴 마하 가로니가 사바하"로서 부사의한 힘이 있음을 전

합니다.

 

따라서 관세음보살은 지금 불가에서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일생보처 보살이 아니라 이미 붓다를 이른 부처님

으로 바로 잡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여러 가지의 장애_마장魔障

 여러 가지의 장애_마장魔障

 

 

자력으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다음의 몇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내마內魔가 있습니다.

소위 번뇌마 등입니다. 불안, 초조, 공포라는 한계 상황을 자력으로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사형수가 자기 이름이 불려지면 “면회요!”하고 호출하는 소리에 벌써 기가 다 빠져 낙지같이 흐느적거리며 나온다고 합니다. 


사형수 같은 입장에 있는 이들의 죽음에 대한 공포, 불안, 초조 - 살길이 막연한데 부채의 독촉에 시달려 하루하루 짓눌리고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고뇌하는 심정, 아무도 몰래 사람을 죽인 자의 미칠 것 같은 죄책감…… 등에서 오는 극복하기 어려운 번뇌마를 어찌 자력으로 벗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

 

14세기에 창궐한 흑사병페스트은 100여 년을 주기로 18세기까지 중세 유럽의 인구를 1/3까지 치사케 한 전율할만한 공포의 전염병이었습니다. 그러한 살인적인 전염병이 창궐한 마을에서 며칠을 지내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놓였다 가정합시다. 또 6‧25같은 난리가 터져 수많은 소중한 인명이 날마다 죽어 가는 전쟁통에 있다고 가정합시다.


이때의 불안하고 초조한 공포의 한계 상황에서 우리가 설사 화두타파 등을 통해 선정에 들 정도의 수준이 됐다 하더라도 진정한 안심입명安心立命은 어려운 것입니다.

독사 구렁이가 내 방 안으로 들어와 숨었다 합시다. 한밤중입니다. 


나에게 접근해 오는 소리가 납니다. 이 경계를 당해 감히 그 뉘라서 초연할 수 있답니까?


안심입병은 자력에 의한 선정의 힘으로는 온전치 못합니다. 보살의 삼매는 한계상황을 극복합니다. 부처님이 이끄시는 삼매력으로 가능해집니다.

 

둘째, 외마外魔가 있습니다.

1) 고약한 원결 영가들의 빙의 2) 용신, 사신, 이매망량, 정매마精魅魔 3) 천마天魔 등에 의한 빙의는 결코 자력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 어느 도인도 이를 떼지 못할 것입니다. 토굴에서 스승 없이 잘 못 공부하면 용신, 이매망량, 천마가 빙의합니다. 용신, 이매망량, 천마들은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성과를 이루어가는 수행자를 방해합니다. 빙의합니다. 빙의된 이들을 떼지 않고 공부한다면 평생을 정진해도 마경에서 헤어나올 수 없습니다. 


이런 것들이 빙의되어 있는 상태의 정신으로는 더 이상 공부할 수 없습니다. 여러 경계로 수행자를 괴롭힙니다. 때로는 묘한 경계를 보여주어 수행자로 하여금 빠져들게 하고, 집착하게 만들어 결국은 정신이 돌아 미치게 됩니다. 또한 죽으면 악도에 떨어집니다.


천마나 귀신주로 사이비 도인의 영가이 빙의돼 있는 무당이나 신기 있는 이들이 가끔 불 보살과 대화를 한다고 자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천마나 귀신의 말을 듣고 불 보살과 대화하는 줄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 점 명심하기 바랍니다.

 

또 지적할 것이 있습니다. 변화술에 능한 천마하늘마가 공부하는 수도인에게 불 보살의 모습으로 둔갑해서 화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들을 절대계에 계시는 붓다로 보면 안 됩니다.


붓다의 화신에서 볼 수 있는 자비·선정·지혜·지계·인욕의 모습을 천마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붓다의 화신과는 마치 왕과 거지만큼 천지 차이입니다. 그들에겐 무량광은커녕 청정한 빛조차 흉내 내지 못합니다. 


그들의 눈엔 욕심과 살기가 있습니다. 해탈한 성자에게서 느낄 수 있는 깨끗하고 청정한 기운을 느낄 수 없습니다. 붓다의 화신은 몸 주변에서 맑고 깨끗한 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마의 몸 주위의 빛은 탁할 뿐입니다.

 

셋째, 다겁생을 살아오면서 지은 크고 작은 악업으로 앞으로 미래세에 받을 과보의 업장 그리고 악, 불과를 이룬 성자의 경지에서 소멸된다는 악·습기習氣들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것을 단절·정리해 주지 않는 이상 10생, 100생을 수행한들 영적인 성장을 기약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지적 사항은 이성異性에 대한 강한 욕구, 성욕과 색마色魔입니다. 20~40대까지의 젊은이들은 성적 잠재욕구 때문에 대부분 꿈에 몽정·몽설을 합니다. 특히 출가해서 부처님으로부터 계를 받은 수행자로서 자위행위나 동성연애는 사음죄로 본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이성에 대한 욕망은 큰 번뇌가 되어 성과를 얻기 어려운 결정적 장애가 됩니다. 그러나 천에 한 사람 불법 공부 잘해서 스스로 깊은 선정의 힘을 얻는 이라면 강한 이성에 대한 욕구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수행자에게 불행하게도 색마라는 외마가 붙게 되면 설사 견성한 공부인이라고 하더라도 천 길 나락에 떨어지게 됩니다. 외마는 번뇌마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점 명심해야 합니다.


다행히 부처님 회상을 만나 공부하는 수행자들은 색마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주기적으로 약사여래부처님께서 수행자의 정수精髓를 뽑아주시기 때문에 정법을 수행하는데 장애가 없게 됩니다. 


이 점 역시 타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외 여러 가지 진리수행자들의 앞을 가로막는 여러 가지 마장들이 많습니다. 인간의 자력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물들이 중첩해 있습니다.

 

다시 강조해둡니다. 자력수행의 한계는 깨달음까지입니다. 견성까지입니다. 이 정도 선정의 힘으로는 지정한 안심입명도 어렵고, 천마 등 장애를 뗄 수도 없습니다. 또한 색이성에 대한 경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으며 업장, 악·습기習氣의 소멸은 더욱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과학, 철학사상에 있어서 깊은 경지에 든 분들의 신념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선정력 보다는 못하다는 것을 밝힙니다.


타력, 부처님의 크신 위신력에 의하여 드는 삼매보살삼매 정도가 돼야 번뇌심, 탐욕심, 중생심 모두가 비로소 녹습니다. 업장까지 녹습니다. 죽을 때 나쁜 병 얻어 똥오줌 누고 죽는 일도 없습니다.

 

 

 

출처 :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Ⅱ≫ 광명 만덕, 자재 만현 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