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11일 금요일

 「부처님의 삼신을 말한다」<1>



                                                    (자재만현큰스님께서 깊은 삼매에 드셔서 쓰신 글)

 

 윤회를 벗어난 세계, 곧 성중(아라한)의 하늘과 아라한 성자가 여러생의 수행을 통해서 증입證入하게 되는 보살의 정토에 대해서 말씀 드리기 전에 먼저 붓다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에 따르면, 우리가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짐승으로 환생하지도 않을 유일한 길은 깨달음을 이루어 성자의 반열에 도달하는 것뿐입니다. 금수처럼 행동하면 반드시 짐승의 몸을 받아 태어납니다. 정업불면定業不免입니다. 지은 업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닦아낼 수 없습니다.

 선불교에서의 간화묵조선법으로 깨달음을 얻었다면 이제부터가 더욱 중요합니다.

 

 아라한_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최고의 극과

 

 음계婬戒를 철저히 지키면서 나 없는 수행, 곧 두타행으로 나가 보림을 잘해서 깨달음을 완성해야 합니다. 인간으로서 궁극의 깨달음,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야 아라한阿羅漢의 성과를 증득합니다. 인간은 여기까지가 한계입니다. 아라한이야말로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최고의 극과입니다. 부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라한에서 보살(부처님께서는 보살 8지의 부동지 이상을 보살이라 하심)로 올라가려면 타력이 필요합니다. 부처님의 절대하신 위신력, 곧 가피력이 요구됩니다. 돌아가신 부모님, 형제, 가까운 직계방계 영가가 한 분이라도 지옥이나 축생계에 남아 있어도 보살과를 얻기 어렵습니다.

 

보살_오직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성취

 

 보살이 되려면 물론 보살행을 많이 해야 하며 효孝가 필요조건이 됩니다. 그리고   아함경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 부모은중경  등의 대승경전을 독송하고,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몇명 다라니를 암송하면 더욱 좋습니다. 그러면서 일심불란 염불선이 되어 깊은 삼매에 들어야 보살지에 들 수 있습니다. 보살위에 이르면 보다 깊은 삼매에 들도록 더욱 정진해 가야 합니다.

 

 대보살지에 오른 성자는 불과를 얻고자 보현행원을 실천합니다. 그래야 궁극에 이르러 붓다 이룰 수 있는 관문, 즉 무량광無量光이라 하는 빛을 보는 것입니다.

 

 이 빛은 광도에 있어서 눈이 부셔서 볼 수 없는 태양의 중심 빛을 백천개 합쳐놓은 빛보다 훨씬 밝아서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억겁토록 내려오면서 지은 업장이 털끌만큼이라도 남아 있는 한 볼 수 없는 빛입니다. 눈앞에 현전해 있어도 중생은 볼 수 없다는 말입니다. 다생의 습기가 완전히 녹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부처님 몸을 이루고 있는 부사의不思議한 빛입니다.

 

 백천만겁토록 내려오면서 지은 업장, 삼독번뇌, 악연惡緣, 빚이 남아 있으면 무량광이라는 빚덩어리를 보는 관문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붓다 되는 이가 겁에 한 분 있을까 말까 하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불과를 이룬 이는 이 몸뚱이와 4개의 영혼체 외에 자기의 불신을 무아 속 절대계에 하나 더 가지게 됩니다. 불신佛身은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색상色相이 단엄端嚴한 적멸상입니다. 교가敎家에서 '원만 보신'이라 이르는 '지복至福의 몸'입니다.

 

 아함경에서는 아라한이 될 수 있는 여러관법(위빠사나선법 등)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대승불교로 넘어 오면서 육바라밀 수행, 염불 수행이 중요시됩니다. 바로 보살이 되는 수행법입니다.

 

 그러나 대∙소승경전에도 부처님 세계의 소식이 별로 없는 것은 따로 기록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불신이 생기고, 불과를 이룬 이가 어떤 과정을 거쳐 자기 불신과 계합을 하는지 법∙보∙화의 삼신 가운데 보신佛身이 인격적인 초월적 실존으로서 중심개념인데도 이에 대한 말씀들은 거의 소개되고 있지 않습니다.

 

 선종의 육조 혜능대사는 반야바라밀을 강조했지만 11세기 티베트 불교의 광명光明이라고

존경받는 미라래빠는 도道의 완성, 즉 성불成佛을 법신뿐만 아니라 보신, 화신까지도 언급하며 삼신을 구족해야한다는 것을 강조한 분이었습니다.

 

 보신불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예例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내가 현지사의 법상法床에 올라 "우리 절의 사월 초파일 행사에는 오전 내내 석가모니부처님과 좌우보처인 문수∙보현보살님, 그리고 관음∙지장∙준제보살님, 약사여래부처님 등 여러 불∙보살님께서 계십니다. 또한 석가모니부처님을 비롯한 불∙보살님께서는 1년 365일 내내 이곳 현지사에서 아침공양을 받으십니다."라고 말하며 사부대중들은 지금까지 부처님의 추상적 법신부처님의 이야기만 들은 관계로 이 법문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이곳 춘천 현지사에서 부산의 어느 절에 초청받아 갈 때 내 몸과 마음이 함께 기차나 비행기를 타고 그 절에 도착해서 대접을 잘 받은 경우와 몸뚱이는 가지 않고 마음으로만 그 절에 간 경우 중에 어느 쪽이 더 실질적이고 중요하겠습니까?

 

 이 몸뚱이와 마음이 직접 가는 것을 보신개념이고, 마음으로만 간 것은 법신개념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부처님이라고 하면 생각 이전의 마은 당체인 법신으로 알고 시방十方과 고금古今에 두루 편재하여 차별없이 평등하다고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성 또는 우주법성 혹은 일심一心의 개념이고, 붓다의 법신이라는 것은 참마음眞如이 우주 자체와 완전 계합한 초월적 인격체인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티베트의 미라래빠처럼 붓다 이룬 이는 법∙보∙화 삼신을 구족해서 평등적인 무아 속 절대세계와 차별적 중생세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분이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중생이 아라한과를 이룰 때까지는 반야바라밀이 중요하지만, 보살이나 붓다 되기 위해서는 큰 삼매력이 아니면 안됩니다. 백천삼매, 대적정삼매에 자유로이 들 수 있어야 자기의 불신佛身을 얻고, 그 깊은 삼매력으로 생사를 자재하며 14무외력과 지혜와 자비, 항사의 신통을 덕고 천백억 화신도 나툴 수 있는 것입니다. 보살위 이상의 삼매를 통하지 않는 지혜를 진정한 생사해탈을 이룰수 없는, 힘이 없는 건혜乾慧일 뿐입니다.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 

 

댓글 없음:

댓글 쓰기